요즘 어디를 봐도 당연한듯 AI 이야기다.
AI 에이전트, 자동화, 생성형 AI. 새로운 서비스를 고민할 때도 자연스럽게 “여기에 AI를 붙일 수 있을까?”부터 생각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가끔은 이렇게 좁아진 시야에 환기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모두가 AI를 바라볼 때, 아직도 전화와 엑셀과 감으로, 그리고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시장은 어디인지 보는 것. 어쩌면 그곳에 더 현실적인 기회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들게 한 사례가 루트릭스다.
루트릭스는 조경 수목 유통을 데이터화하는 스타트업이다. 쉽게 말하면 나무를 사고파는 시장의 정보를 정리하는 회사다. 전국 수목 농장의 데이터를 모아 어떤 농장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규격은 어떤지, 수량과 가격은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만든다.
솔직히 처음 들으면 요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할 아주 화려한 사업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무, 조경, 농장, 중개. 스타트업보다는 오래된 산업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 지점이 흥미로웠다.
자세히 보면 오래된 시장일수록 데이터가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누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가격이 적정한지, 어떻게 구매해야 하는지, 지금 구매 가능한 수량이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구매자는 계속 전화를 돌리고, 판매자는 아는 사람 중심으로 거래하고, 중개자는 발로 뛰며 정보를 연결한다.

이런 시장에서 고객이 원하는 건 대단히 복잡한 기술이 아니지 않을까?
필요한 건 의외로 단순할 것이다.
어떤 상품, 그러니까 어떤 나무가 있는지, 얼마인지, 몇 주를 살 수 있는지, 어떻게 살 수 있는지, 사진으로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지.
결국 고객은 멋진 기술보다 “바로 살 수 있는 정보”를 원할 것 같다.
이 부분이 기획자인 나로서는 꽤 중요하게 느껴졌다. 좋은 서비스에 대한 정의는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흔히 말하는 좋은 서비스는 꼭 새로운 기술에서만 출발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누군가 매일 반복해서 겪는 불편함, 매번 전화로 해결하는 일, 엑셀과 경험에 의존하는 업무 속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 불편하고 복잡하지만 어느새 당연해진 부분을 찾아, 조금 더 간편한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AI가 아무리 발전해 많은 일을 대신해준다고 해도, 데스크 리서치부터 현장에 나가 고객의 경험을 직접 따라가 보는 일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루트릭스 사례를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됐다.
AI 시대에도 돈이 되는 문제는, 고객들이 정말 원하는 문제는 꼭 AI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데이터가 없는 시장.
정보가 흩어져 있는 시장.
사람이 직접 발로 뛰어야만 굴러가는 시장.
고객이 매번 같은 질문을 전화로 반복해야 하는 시장.
프로세스가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시장.
이런 곳에 오히려 우리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리고 이런 기회 앞에서는 AI 기능을 먼저 떠올리기보다, 먼저 물어봐야 할 질문들이 따로 있는 것 같다.
“아직도 비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시장은 어디인가?”
“정보가 없어서 모두가 불편한 산업은 어디인가?”
“사람들이 당연하게 참고 있는 불편은 무엇인가?”
기획은 유행어를 붙이고 따르는 일이 아니라, 문제를 발견하고 구조를 바꾸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루트릭스가 나무 시장에서 발견한 기회는 꽤 인상적이다. 모두가 AI를 외치는 시대에도, 아직 데이터가 없는 시장에는 여전히 큰 기회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은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조금씩 더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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